*제가 2009년 초에 작성한 글이라 현재 시점과 다소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냥, 위키 에스파냐어판 번역을 토대로 약간의 편집을 했지요. 그래도 영어판 보단 더 자세히 나옵니다.ㅎㅎ 

 

일반적으로 보까라 불리는 끌룹 아뜰레띠고 보까 후니오르스Club Atlético Boca Juniors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자리한 하나의 스포츠클럽이다. 클럽명은 보까La Boca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역명에서 유래한다. 1905년 4월 3일, 5명의 이딸리아 이민자들에 의해 클럽은 창단된다. 농구와 배구 역시 프로리그에 참여를 하지만 축구는 클럽의 가장 중요한 종목이다.

 

  아르헨디나 축구의 5대클럽중 하나로 간주되는 보까는 공식적인 국제대회에서 18차례의 우승을 차지, 이 부문에서 이딸리아의 AC 밀란과 함께 공동 1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엔 3번의 대륙간컵(도요타 컵을 비롯한 인터콘티넨탈 컵)과 6번의 꼬빠 리베르따도레스가 포함된다. 아르헨띠나 리그에서도 23번의 우승을 차지, 2번째 최다 우승팀이다. 그외 7번의 아마추어 시절 우승기록(6번의 깜뻬오나또와 1차례의 꼬빠 델 오노르)을 갖고 있다.

 

  보까 후니오르스는 1998년 끌라우수라와 1999년 끌라우스라 사이에 작성한 40경기 연속 무패의 기록(아르헨디나 기록)을 자랑한다. IFFHS의 랭킹으로 보까는 현재 세계 3위의 자리에 있다.

 

  보까의 유니폼을 입은 세계적 레벨의 선수는 디에고 마라도나, 후안 로만 리껠메, 가브리엘 바띠스뚜따, 안또니오 라띤(196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띠나의 주장. 잉글랜드와의 8강전 퇴장으로 유명) 등이 있다.

 

  1. 역사

 

 

(보카의 창립자 에스떼반 비글리에또(이탈리아식으론 빌리에또)

 

보까 후니오르스는 보까 지구의 다섯 젊은이, 에스떼반 바글리에또, 알프레도 스까르빠띠, 산띠아고 뻬드로 사나, 그리고 후안 y 떼오도로 파렝가, 이들이 솔리스 광장에서 모임을 가졌던 1905년 4월 3일, 월요일에 창단된다.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겠지만, 이들 이딸리아 이민자들은 아르헨띠나에서 가장 인기있는 클럽의 풍부한 역사에 있어 첫 장을 기록하게 된다.

 

  클럽의 명칭은 지역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차용했지만, 보까 지구가 갖고 있던 가난한 지역이란 평판과 대비되는 명칭을 부여하는 영어 톤을 주기위해 ‘Juniors'란 단어를 덧붙였다.

첫 2년 동안 보까 후니오르스는 모두가 알고 있는 고전적인 파랑과 노랑 조합이 도입되기까지 다른 형태의 유니폼을 사용했다.

 

  그것은 장밋빛의 것으로, 이후 흑백의 세로 줄무늬 유니폼이 1907년, 항구에 정박해있던 스웨덴 배의 국기에서 착안된 파랑과 노랑 조합을 도입하기로 결정하기까지 사용되었다.

 

  보까 후니오르스는 아마추어 시절, 1919, 20, 23, 24, 26, 30년 6번의 우승을 차지하고 1925년의 컵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부유한 역사를 향유한다.

 

  1925년에는 유럽 원정 중 가진 명문 팀들과의 19차례의 경기 중 15차례를 승리하는 성공을 거둔다. 이로 인해 AFA는 보까를 그 해의 팀으로 선정한다. 평면적으로 아마추어 시절, 보까의 6차례 우승은 알룸니(10차례)와 라씽(9차례)에 뒤이은 것이다.

 

  보까 후니오르스는 그들이 첫 우승팀이 된 프로페쇼날의 시작부터 아르헨띠나 1부리그에 참여한다. 1930년, 아마추어에서의 마지막 우승컴 역시 그들이 차지했다.

 

  프로리그에서 23번의 우승을 차지한 보까는 최다 우승 2위의 팀이다. 깜뻬오나또: 1931, 34, 35, 40, 43, 44, 54, 62, 65. 나쇼날 1969, 70, 메뜨로뽈리따노 1976, 나쇼날 1976, 메뜨로뽈리따노 1981, 아뻬르뚜라 1992, 98, 끌라우수라 1999, 아뻬르뚜라 2000, 2003, 2005, 끌라우수라 2006, 아뻬르뚜라 2008.

 

  국제 대회 역시 18차례를 석권, 이 부문에서 AC 밀란과 공동 1위이다. 물론 아르헨띠나 에서도 최다이며, 뒤를 이어 인데뻰디엔떼가 15차례를 우승중이다. 우승대회. 대륙간컵 3회: 1977, 2000, 2003. 꼬빠 리베르따도레스 6회: 1977, 78, 2000, 2001, 2003, 2007. 꼬빠 수드 아메리까나 2회: 2004, 2005. 레꼬빠 수드아메리까나 4회: 1990, 2005, 2006, 2008. 수뻬르꼬빠 수드아메리까나 1회: 1989. 꼬빠 마스떼르 1회: 1992. 꼬빠 데 오로 니꼴라스 레오스 1회: 1993.

 

  보까는 또한 아르헨띠나 국내 공식 대회에서 41차례의 우승을 차지, 38번의 리베르를 물리치고 최다 우승팀의 영예를 보유하고 있다.

 

  1998년부터 2000년 까지의 까를로스 비안치 시대에 보까는 세계 최고 클럽의 반열에 오르며 비안치는 우승컵의 획득 면에서 보까의 전설적인 감독 후안 까를로스 로렌쏘(1977, 78 꼬바 리베르따도레스에서 보까의 2연패를 이룩)를 능가하는 업적을 이룬다.

 

  2005년 6월, 보까에 두 번의 리그 우승과 두 차례의 레꼬빠스 수드아메리까나스, 그리고 한 차례의 꼬빠 수드아메리까나를 안길 알피오 바실레가 취임한다. 2006년 중반, 바실레는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소집되어 보까를 떠나게 된다. 재도약을 위한 선택은 리까르도 라 볼뻬가 되었다. 보까가 또다시 리그의 우승을 향하게 된 것처럼 보였을 때, 마지막 두 경기의 패배라는 뜻밖의 무너짐이 그들을 찾았다. 에스뚜디안떼스 LP와의 최종전 직후, 라 볼뻬는 감독직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의 경질로 클럽은 곧바로 팀을 맡아줄 성공적인 경력의 감독에 눈을 두었다. 그리고 벨레스 사르스피엘드와의 계약을 파기한 미겔 앙헬 루소가 새로운 감독 자리를 받아들이게 된다.

 

  2007년 6월, 보까는 그들의 6번째 꼬빠 리베르따도레스 우승을 차지한다. 이것은 보까에게 피파나 각 대륙 연맹 주관의 클럽 국제대회에서 17번으로, 15번의 인데뻰디엔떼와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유럽의 밀란과 동등한 위치에 서도록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해 12월에 열린 세계 클럽 월드컵 결승에서 그들은 밀란에게 4-2로 패한다.

 

  2008년 8월, 그들은 꼬빠 수드아메리까나 2007의 챔피온 아르세날 데 사란디를 맞아 원정 1-0, 봄보네라에서의 2-2 의 결과로 레꼬빠 수드아메리까나 2008의 우승팀이 된다. 이 타이틀로 보까는 18번의 국제대회 우승으로 밀란과 동등한 위치로 복귀한다.

 

  2008년 12월, 보까는 띠그레, 산 로렌쏘와의 동률로 인한 챔피온 결정전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보까는 산 로렌쏘에 3-1 승, 띠그레에 0-1 패배를 기록했지만, 골득실에 따라 우승을 차지한다.

 

  2. 유니폼

 

  1905: 흰색 소매에 회색과 검은색 세로 줄무늬(마누엘라 파렝가에 의해 만들어짐). 대부분의 경기들에서 사용.

  1905: 완전한 하늘색. 소수의 경기들에서 사용.

  1906: 하얀색에 파란 줄무늬가 들어간 영국 스타일의 셔츠를 사용.

  1907: 보까 역사상 처음으로 파랑과 노랑의 셔츠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노란 줄은 대각선이었다.

  1912: 최종적으로 수평의 노란 줄이 채택되었다.

  1981: 클럽의 약어를 의미하는 작은 알파벳 네 글자, CABJ가 좌측 상단에 새겨졌다. 그리고 노란 세 줄의 상단에 그들에게 의류를 제공하는 스포츠 용품사의 마크를 새겼다.

  1983: 유니폼에 처음으로 광고를 개제하기 시작. 첫 주인공은 마라비샤 포도주의 마크.

  1996: 중대한 변화가 생긴다. 파랑과 노랑 사이에 하얀 줄 두 개가 새겨졌다. 하나는 경계의 상단에, 다른 하나는 밑에 위치되었다.

  1998: 하얀 줄이 남고 노란 줄이 예전의 넓은 줄로 돌아갔다.

  2000: 노란 줄이 다시 좁아졌다.

  2005: 클럽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구가 클럽의 첫 세기를 의미하는 상징으로서 노란 줄 사이에 새겨졌다. una X azul y amarilla. 파랑과 노랑 1 세기.

  2006: 유니폼이 짙은 남색과 수평의 노란줄이란 전통적인 디자인으로 회귀한다.

원정 유니폼은 역사적으로 파란 줄이 들어간 노란색이나 노란 줄이 들어간 흰색이었고 그 새로운 모델은 흰색 바탕에 수직의 파란색 줄무늬가 들어가게 되었다.

 

 

(1905)
(1906)
(1907)
(desde 1912)

  3. 인차다(열성팬)

 

   (1) 별명

 

  a: La 12. (12번째 선수)

  보까 후니오르스의 서포터 라 도쎄는 1925년 유럽 원정에서 비롯되었다. 그 원정에서 클럽은 열광적인 보껜세(보까의 사람)이자 원정에 자금을 조달한 빅또리아노 까파레나를 동반한다. 그 기간 동안 까파레나는 모든 면에서 팀을 돕는다. 그는 선수들과의 관계에 있어 기술자가 되기도 했고 대표가 되기도 했고, 심지어 마사지사가 되기도 하며 ‘12번의 선수’로 임명되었다. 아르헨띠나에 돌아와 까파레나는 마치 선수처럼 유명해진다. 그 이후로 까파레나는 ‘보까 공화국의 친구들’이란 지역적 모임을 만들어 일생의 남은 부분을 보까를 후원하는 데 바친다.

 

  하지만 실제로, ‘12번 선수’란 용어는 ‘끄리띠까’ 지의 기자 빠블로 로하스 빠스가 “인차다야말로 보까의 12번 선수이다.”라고 말한 것 처럼 보까의 열성팬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 이후로, ‘12번 선수’는 아르헨디나 축구에 있어 가장 거대한 규모의 팬들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제 알베르또 J. 아르만도의 임기 중, 클럽이 그들을 공식적으로 ‘12번 선수’로 임명한지 60여년이 되고 있다.

 

  오늘날, 이 명칭은 ‘라 도쎄’처럼 주로 팬 집단을 명명하는 데 쓰인다. 이딸리아의 제노아 역시 그들의 팬을 ‘12번 선수’라 부른다.

 

  b: 쎄네이쎄스(Xeneizes, 제노바의 형용사.)

  클럽을 그들과 일치시키는 이 명칭은 초창기 보까의 팬들 대다수가 20세기 초 보까 지역에 정착한 이태리 이민자들이었던 데서 비롯되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거대한 제노바인 집단으로 인해, 클럽과 연관하여 그들 모두를 명명하기 위해 ‘쎄네이쎄스’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단어는 제노바 인을 의미하는 리구리아 지역(제노바가 이 지역의 수도)의 방언 ‘zeneïze’에 대한 일종의 변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럽의 지도층은 x(g나 z로 시작하는 것이 아닌, 즉 변형된 형태를 공식적으로 인정)로 명칭을 공식화 했다. 1990년대 후반을 지나며 그들은 등 밑에 ‘Xeneizes'라 적힌 셔츠를 도입했다.

 

  2005년, 보까 후니오르스의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움직임으로서 그들의 명칭은 100년을 의미하는 에스빠냐 어 ‘Centenario'를 Xentenario로 변형하는 캠페인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4. 인기도

 

  각 팀들의 팬들이 대부분 그 팀이 속한 도시에 거주하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과 달리, 보까 후니오르스의 ‘인차다(리베르역시 마찬가지)’는 전국에 골고루 펼쳐져있고 전통적으로 ‘과반수이상’으로 정의됐다. 그렇기는 하지만 아르헨띠나 다른 팀들에 등록된 지지자들의 수치에 대한 조사와 연구들은 보까의 지지자들이 반을 초과하지 않는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양한 조사들은 보가 후니오르스를 아르헨띠나 최고의 인기 클럽에 위치시키며 그들의 라이벌 리베르 쁠라떼가 근소한 차이로 뒤를 잇는다. 현재 그들을 가장 높은 곳에 위치시키지 않은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다음의 리스트는 이에 대한 세부목록이다.

 

   2003-2006년에 걸친 꼰술또라 에끼스Consultura equis의 조사에 의하면 18세 이상의 아르헨띠나 성인 90.3%가 어느 한 축구팀의 팬이며 그들의 40.4%는 보까 후니오르스를 32.6%는 리베르를, 그리고 5.7%가 인데뻰디엔떼를 지지한다. 다음은 거주지에 따른 지지도의 형태이다. 

 

 

수도권 빰뻬아나(빰빠스,수도권 남쪽) 빠따고니아(최남부) 북서부 꾸죠(멘도싸를 중심으로한 서부 산악지대) 북동부 전체
보까 후니오르스 40,4 % 33,8 % 44,1 % 35,0 % 44,7 % 47,7 % 40,4 %
리베르 쁠라떼 29,9 % 28,5 % 39,8 % 37,6 % 40,7 % 39,0 % 32,6 %
인데뻰디엔떼 7,0 % 4,9 % 3,8 % 5,3 % 5,7 % 4,0 % 5,5 %
Consultora Equis, 2006.[10

 

  꼰술또라 에끼스의 조사는 또한 보가 후니오르스의 지지층이 상류계급보다 노동자계급에 더욱 두텁게 관련되었다는 통념을 확실하게 해준다.

 

   사회 경제적 위치에 따른 축구 클럽에 대한 지지

중하 중상,상 전체
보까 후니오르스 46,7 % 41,5 % 31,2 % 28,9 % 40,4 %
리베르 쁠라떼 34,1 % 32,0 % 29,7 % 35,7 % 32,6 %
인데뻰디엔떼 4,0 % 6,1 % 6,9 % 7,6 % 5,5 %
Consultora Equis, 2006.[10]

 

  그 밖에 '비바'와 '엘 그라피꼬'의 조사에서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까는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비바의 경우 보까 y 리베르는 27.3% y 25.8%, 엘 그라피꼬의 경우 보까 31.2%, 리베르 30%의 통계가 나왔다.  Encuestas de Viva y El Gráfico 빠히나 12의 조사에서는 41.5%가 보까를31.8%를 지지한 리베르를 지지했다.  

 

   5. 경기장(보카의 홈구장, 라 봄보네라(La Bombonera). 보카 홈구장의 정식 명칭은 에스따디오 알베르또 J. 아르만도 이나 '봄보네라'란 별칭은 이 구장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다. '봄보네라'는 에스파냐어로 과자곽을 의미하는 데 구장의 노란색 외관이 과자곽을 닮은 데서 비롯되었다.) 

 

  창립 이래, 보까는 종목에 따라 다른 경기장들을 그들이 시작된 지역에서 사용해왔다. 주목할만한 예외는 빌데Wilde 지역의 토지를 구입한 1914년에 벌어진다. 변화는 팬들에 의해 집요한 저항을 받았다. 보까와 이야기 한 1,300-1,600에 이르는 소씨오들은 그들의 월례비를 지불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1916년, 클럽은 보까 지역으로 되돌아오기를 결정하게 된다. 빌데의 경기장은 봄보네라의 건설이 구상되기 시작한 1937년까지 사용된 브란덴과 델 끄루쎄로 교차로의 경기장에 대체된 1924년 까지 사용되었다. 현재의 경기장이 건설되는 동안 팀은 페로 까릴 외스떼의 경기장을 사용했다.

 

  알베르또 J. 아르만도는 1975년 5월 25일, 1978년 월드컵의 본부로 쓰여지기로 결정된 보까 후니오르스 스포츠 도시에 새롭고 웅장한 경기장의 건설을 약속한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일이 다가왔고, 전체적으로는 아르헨띠나 전반에, 개별적으로는 각 클럽에 불어닥친 중대한 경제적 위기로 공사는 거의 시작되지 못한채 좌초되었다.

 

  미우리씨오 마끄리는 경기장의 부서진 오래된 좌석을 작은 야외 관람석으로 교체시키는 개조를 행한다. 그와 동시에 금속 소재의 새로운 좌석이 설치되었다. 이 개조는 경기장의 수용능력을 57,395명으로 향상시킨다.

 

  2008년에 발효된 FIFA의 법령으로 인해 모든 관람객수는 좌석 수로 세어지게 되었고 봄보네라의 수용인원은 33,000으로 줄게 되었다. 그로인해 그것이 가능한 변화인가  단순한 확장 인가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봄보네라는 세계에서 가장 신화적인 경기장 중 하나로 손 꼽힌다. 브라지우의 산뚜스 소속으로 보까를 상대로 한 1963년의 꼬빠 리베르다도레스 결승에서 활약한 축구 황제 뻴레는 "세계 모든 경기장에서 뛰어봤지만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나올 때 마치 경기장이 살아있는 것처럼 지진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은 결코 가져보지 못했다." 라고 말했고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는 이 곳을 '축구의 사원'이라고 형용햇다. 2004년 영국의 '옵저버' 지에 따르면 이 경기장에서 리베르 쁠라떼를 상대로한 수뻬르끌라시꼬에 참여하는 것이 세계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를 관람하는 것으로 선정되어 그것과는 매우 상이한 포물로 1 윗편에 자리했다.  

 

  6. 보까의 역사적 기록

 

  1부리그 잔류 횟수: 아마추어시절 18, 프로페쇼날 78회

  2부리그 잔류 횟수: 아마추어시절 5, 프로페쇼날 0회

 

  최다골차 승리

  아마추어시절 국내대회: 9-0 알룸니, 1923년. 아르헨띠노 데 낄메스. 뽀르떼뇨, 이상 1926년

                     국제대회: 2-0 우루과이의 나쇼날. 1920년 5월 25일, 9월 20일. 꼬빠 오노르 데 꼬우세니에르(아르헨띠나 컵대회 우승팀과 우루과이 우승팀간의 대결)

   

  프로페쇼날 국내대회: 11-1 띠그레. 1942년

                  국제대회: 7-0 볼리비아의 볼리바르. 2007년 4월 27일.

 

  최다골차 패배

  국내대회: 1-7 인데뻰디엔떼. 1940년 7월 21일

  국제대회: 1-6 브라지우의 빠우메이라스. 1994 꼬빠 리베르따도레스.

    

  AFA 주관의 공식대회 최고성적: 1위

                                최하성적: 17위

   

  최다연승기록: 12 끌라우수라 2006- 아뻬르뚜라 2006 

 

  클럽 역사상 최다득점자: 로베르또 체로. 220골

  프로페쇼날 국내리그 최다득점자: 마르띤 빨레르모. 195골

                  국제대회 최다득점자: 마르띤 빨레르모. 30골

 

  아르헨띠나 축구의 최다 무패기록: 40경기. 끌라우수라 1998 15라운드(5월 5일)- 끌라우수라 1999 16라운드(6월2일)

  아르헨띠나 아마추어 축구의 무패기록: 59경기(1924-27)

 

  최다 경기출전선수: 로베르또 모우쏘. 425경기(1971-84)

 

  가장 많은 우승컵과 함께 한 선수: 기셰르모 바로스 스첼레또 y 세바스띠안 바따글리아. 16회

  아르헨띠나에서 가장 많은 타이틀을 획득한 클럽: 국내외 공식대회에서 41회.

  공식 국제대회 세계 최다우승횟수: 18회. Ac밀란과 공동1위.

 

  수뻬르끌라시꼬 최초 득점자: 빠블로 레데스마(1907년 4월 15일)

 

   세계 클럽월드컵에 아르헨띠나 클럽 최초로 참가.

   세계 클럽월드컵(도요타, 인떼르꼰띠넨딸 컵 포함)을 3회 제패한 유일한 아르헨띠나 팀.

 

  보까 출신의 주요 선수

 

 

  •  기셰르모 바로스 스첼레또
  •  세바스띠안 바따글리아
  •  델핀 베니떼스 까세레스
  •  호르헤 베르무데쓰
  •  마리오 보셰
  •  로베르또 까바냐스
  •  오스까르 꼬르도바 
  •  디에고 라또레
  •  

 
  •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  세르히오 마르띠네쓰
  •  훌리오 멜렝데쓰 
  •  로베르또 모우쏘
  •  까를로스 나바로 몬또샤 
  •  마르띤 빨레르모
  •  비쎈떼 뻬르니아 
  •  안또니오 라띤
  •  후안 로만 리껠메
 
  •  알프레도 로하스 
  •  앙헬 끌레멘떼 로하스 
  •  까를로스 아돌포 소사
  •  까를로스 떼베쓰
  •  프란시스꼬 바라쇼
  •  세베리노 바렐라
  •  

      개인 기록

     

      국내 대회 득점왕

     

      프란시스꼬 바라쇼(1933)

      마리오 보셰(1946)

      호세 보레쇼(1954)

      우고 꾸리오니(1973 메뜨로뽈리따노)

      디에고 라또레(끌라우수라 1992) 세르히오 마르띠네쓰(아뻬르뚜라 1993 y 끌라우수라 1997)

      마르띤 빨레르모(아뻬르뚜라 1998 y 끌라우수라 2007)

      로드리고 빨라씨오(아뻬르뚜라 2006)

     

      8.보까 후니오르스의 흥미로운 기록들

     

      아마추어 시절 보까를 위해 활약한 로베르또 체로는 1931년 3월 29일, 오노르 y 빠뜨리아(명예와 조국)을 상대로 7골을 기록한다. 이는 보까에서 한 선수가 한 경기에 기록한 최다 득점이다.

     

      우루과이 공격수 세베리노 바렐라는 3년간 14차례에 걸쳐 보까를 위해 그에게 주어진 모든 페널티 킥을 성공시켰다.

     

      보까 후니오르스는 마지막 아마추어 참피온(1930)이자 첫 번째 프로페쇼날 챔피온(1931)이다.

     

      보까가 띠그레를 상대로한 11-1의 승리는 보까의 역사상 가장 큰 점수 차의 승리이자 1967년 이후의 아르헨띠나 기록이다.

     

      단지 2명의 선수만이 리베르를 상대로 한 경기에 4골을 기록했다. 1955년 마리오 보셰, 1974년 2월 3일 마리아 가르씨아 깜본.

     

      도밍고 따라스꼬네는 1928년 올림픽에서 4경기 11골을 기록, 경기당 2.75골을 몰아쳐 이 부분 공식 국제대회 최고 기록으로 남고 있다.

     

      보까 후니오르스는 1999년 수립된 40경기 연속 무패로 이 부문 아르헨띠나 기록을 갖고 있다.

     

      유니폼에 이름(별명)을 새긴 최초의 아르헨띠나 축구 선수는 우고 가띠 이다.(Jet을 셔츠에 새김)

     

      까를로스 나바로 몬또샤는 보까의 골키퍼중 가장 오랜 시간 연속 무실점 기록을 갖고 있다. (824분, 아뻬르뚜라 1992)

     

      최다득점자

     

      아마추어-프로페쇼날 통합

    1. 로베르또 체로 (1926-1938) 221골

    2. 마르띤 빨레르모 (1997-2000; 2004- 현재) 198골 [30]

    3. 프란씨스꼬 (1931-1939) 194골

    4. 도밍고 따라스꼬니 (1922-1932) 193골

    5. 하이메 사를랑가 (1940-1948) 128골

    프로페쇼날 시대

    1. 마르띤 빨레르모 (1997-2000; 2004-presente) 198 goles

    2. 프란씨스꼬 바라쇼 (1931-1939) 194 goles

    3. 하이메 사를랑가 (1940-1948) 128 goles

    4. 마리오 보셰 (1941-1949; 1955) 124 goles

    5. 델핀 베니떼스 까쎄레스 (1932-1938) 115 goles

     

      9. 우승경력

     

      국내공식대회

    꼬빠 독또르 까를로스 이바르구렌 5회: 1919, 1923, 1924, 1940, 1944

    꼬빠 데 꼼뽀뗀씨아 호케이 끌룹(하키 클럽 쟁탈배) 2회: 1919, 1925

    꼬빠 델 오노르 1회: 1925

    꼬빠 에스띠물로 1회: 1926

    꼬빠 데 꼼뻬뗀씨아 브리따니까 1회: 1946

    꼬빠 아르헨띠나 데 풋볼 1회: 1969

    아마추어 1부리그 6회: 1919, 20, 23, 24, 26, 30

    프로페쇼날 1부리그 23회: 1931, 34, 35, 40, 43, 44, 54, 62, 64, 65 나쇼날 1969, 70 메뜨로뽈리따노 1976 나쇼날 1976 메뜨로뽈리따노 1981 아뻬르뚜라 1992, 98 끌라우수라 1999 아뻬르뚜라 2000, 2003, 2005 끌라우수라 2006, 아뻬르뚜라 2008

    비공식 국내 대회

    쎈뜨랄 리그의 개혁자 컵: 1906

    알비온 리그의 바로네 컵: 1908

    공식 국제 대회

    대륙간컵 3회: 1977, 2000, 2003

    꼬빠 리베르따도레스 6회: 1977, 78, 2000, 2001, 2003, 2007

    꼬빠 수드아메리까나 2회: 2004, 2005

    레꼬빠 수드아메리까나 4회: 1989, 2005, 2006, 2008

    수뻬르꼬빠 수드아메리까나 1회: 1989

    꼬빠 마스떼르 1회: 1992

    오로 니꼴라스 레오쓰 컵: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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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모스아르헨티나

2011.02.28 16:58:57

아르헨티나에서 절대적인 팬층 확보한 보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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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Brazil 10/11 Home No.9 RobinhoRobinho70

2011.03.01 00:24:50

잘 봤습니다. ㅋㅋㅋ 조만간 소주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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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린

2011.03.01 13:18:24

축구 보는 사람이라면 남미축구 관심없어도 안다는 보카와 리베르의 관계...

남미축구짱

2011.05.18 02:25:16

네..보카라는 팀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세부적으로 읽어보긴 첨이네여 .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해여.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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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Cruz Azul 10/11 Home메히꼬

2011.09.24 20:22:15

좋은글 작성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태클걸고 싶은 마음은 아니니 이런 말 해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보카 주니어스에 대한 표기 문제인데요.

남미에는 J발음이 본토 수도권 스페인어인 카스티야어와 다른 ㅎ가 아닌 ㅈ와 더 비슷하게 발음하기 때문에 후니오르스가 아닌 주니오르스가 맞다는 분들도 계시긴 하는데 글에서도 나와있듯이 보카의 팀명이 말 그대로 영어권의 '주니어'를 뜻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서반어식으로 읽지 않는걸로 알고 있습니다.즉 애초에 영어 단어를 가져와서 영어로 읽는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후니오르스도 아니고 주니오르스도 아닌 영어의 '주니어스'로 읽으면 되는걸로 압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PhPnaiemi0s

보카 주니어스의 클럽송을 들어보셔도 확연히 느끼실겁니다.

title: Penarol 11/12 Home우루과쇼

2012.07.03 03:17:47

사실 남미에 있으면서 '보카'란 팀을 풀네임(영어 써서 죄송함다, 이거에 대한 한국말이 안떠올라서)으로 들은적이 없어서요. 그저 '보카', '리베르' 그러거든요. 근데 일반적인 경우 아르헨티나 역시 영어에서 파생된 단어들을 현지식으로 읽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후니오르스'로 표기했는데, 'juniors'의 발음 문제에 대해 창피하게도 얘기해 본 적이 없네요. 일단 방송 미디어에서는 영어식 발음에 가깝게 발음합니다.

그리고 남미의 카스테샤(자,야)노 역시 j발음을 ㅎ발음으로 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목구멍 뒤에서 가래뱄듯 목뒤를 긁어서 내는 ㅎ발음이죠. 포어나 r발음과 비슷하다 하면 설명이 될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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